[국어독본]식민지 교과서에 그려진 조선 1
일제가 조선을 침략해 1910년부터 1945년 까지 36년간 식민통치를 한 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한국인 이라면 모두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제가 식민지배를 할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교육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이라 함은 지식의 전파와 국민의 지성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하는 교육이 아니다.
일본이 행한 교육은 간단히 말해 세뇌작업임에 틀림없다.
혹시, 이런 생각 해본적 있는가? 190X년~ 191X년에 태어나 일제치하에서 보통학교, 중등학교, 사범학교, 고등학교, 직업학교 등을 다닌 사람들 말이다. 그 사람들이 식민지 이전의 조선을 알고 있을까? 그 어린 아이였던 사람들이 일제 치하에서 나고 자라, 성인이 되었을 때 과연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자각이 있었을까? 어땠을까?
대답은 당연하게도 X 다.
사람들은 의무교육을 그냥 나라에서 배우라고 하니까 배우지 뭐, 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교육이란게 참 요망하기 짝이없다. Nation의 개념으로서의 국가가 생겨나고, 내셔널리즘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그때, 정치가, 지도자 들은 새롭게 국민을 통제할 수단이 필요했다. 자신들만 글을알고, 잘나서 아무리 정론을 펼치고, 열변을 토해도 정작 국민(국경으로써의nation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관심도 없었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 힘든것이다.
그렇다 보니, 애국심, 충성심을 요구해야 하는데(전쟁을 해야 하니까), 당시의 국민은 그런 개념조차 없었다. 그들이 과연 미개한(비교적 덜 발전 된)국가를 침략하기 위한 군대가 될까?
어림도 없다. 여기서 위정자들은 교육의 필요성을 느낀다.
미셸 푸코가 주장한 것 처럼, 근대의 국가는 국민을 통제하고 컨트롤 하기 위해 정치가들이 어떻게 폭력과 억압을 관철시키는가 하는 난관에 부딪혔다. 그 결과 그들은 적절한 상벌을 통해, 국민을 억압하고 통제하려한다. 그런데 통제도 말이 통해야 할게 아닌가?
물건을 훔치지 말아라 라고 해도, 왜 훔치면 안되는지. 훔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훔치지 못하게 하고, 위반할시 처벌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최초의 근대교육이 탄생하는데, 미셀 푸코가 지적한 것 처럼, 근대 교육의 성격은 국민에대한 감시와 통제, 세뇌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일본은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이미 타이완(대만)을 1895년 식민지로 지배했고, 식민지 교육 시험의 장으로 이용된다. 이때 일본은 식민지 교육에 대한 경험을 쌓고, 이론을 확립하는데, 그 가운데 주류가 되는 사람이 시데하라 타이라(幣原坦1870~1953)다. 그는 조선이 완전히 식민지화 되기 이전, 일본이 설치한 학무국장으로 조선에 재임하는데(통감부 시절 총독부가 설치되자, 쫒겨나 일본으로 소환된다.), 그때 조선 교육론, 식민지 교육론 등을 집필한다.
각설하고, 시데하라가 기틀을 세운 교육론을 후임 학무국장이 개량(자기네 입맛에 맞게)하여 조선에 학교를 세우고, 총독부가 직접 검수한 교과서를 배부한다. 그 가운데, 국어 교과서 [보통학교 국어독본]을 가지고, 나는 논문을 썻고, 어느날 갑자기 문득 생각이 났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조금씩 공부를 해보려한다.
보통학교 국어독본에 그려진 조선
제 2기 국어독본 권3-1
입학식
종이 울렸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이학년의 장소에 서서, 기뻤습니다.
그로부터, 입학식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일학년은 오늘부터 이 학교의 생도가 되었습니다. 훌쩍훌쩍 울어서는 안됩니다. 이학년보다 위의 사람(モノ)은 많은 남동생, 여동생이 생겼습니다. 잘 놀아주도록 하세요. 괴롭혀선 안됩니다.'
라고 말하셨습니다.
교과서에 그려진 입학식의 모습이다. 하지만, 조선교육론이나 당시의 신문, 잡지를 찾아보면, 절대 평화롭지 않았음을 잘 알 수 있다.
제2기 국어독본 권4-11
바가지 이야기
어느 밤 바가지가 잔뜩 모여서, 여러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들이 옛날부터 사람의 도움이 된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그렇데 생각하지 않는것 처럼 보여, 소중하게 대해주지 않는다.'
라고 한명이 말하자, 또 한사람이
'우리들의 동료가 없었다면, 사람은 얼마나 곤란했을까.'
라고 말했다. 세상 물정에 밝은 바가지가
'옛날, 신라(シラギ)의 박공(호리병 박)은 바가지에 타고, 동쪽의 나라에서 왔다고 하는 것이다.'
똑똑한 바가지가
'나는 옛날의 일은 모르지만, 지금 우리들은 꽤나 여러역할을 맡고 있다. 물을 뜨거나, 물건을 넣거나, 때때로 되의 대신으로도 한다. 이 정도로 도움이 되고 있는 우리들을 작을때 떼어내는 경우도 있다. 정말 질린다.'
라고 말했다. 또 한명이
'그렇다. 봄에서 가을에 걸쳐, 그 초가지붕이 예쁘게 보이는 것은, 대체 누구의 덕인가. 우리들의 줄기가 지붕에 펼쳐져 새하얀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맞거나 하기 때문이 아닌가.'
라고 말했다. 모두 커다란 얼굴을 곤두세우고, 세차게 흔들고 생각나는 이야기들로 밤이 새는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신라의 박공이 바가지를 타고 동쪽의 나라에서 왔다고 하는 것이다.'
삼국시대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왜곡하여 그려 놓았다. 반도에서 열도로 문화, 인구, 농업, 문자(한자)가 전파된 것을 뒤집어서 일본에서 신라로 건너온 것으로 묘사했다. 이는 고대부터 한일이 관계가 있으며, 일본이 조선에 많은 것을 전파해 주었고, 고대부터 관계를 맺고 있는 두 민족이 작금에 이르러 일본의 지배를 받는것이 아니라 다시 한 민족이 되는 것이라는 담론이 일었다.